삼일운동 이듬해(1920)는 전조선이 계엄 하에 놓이는 등 어수선한 해였다.
일제의 강압 통치가 심화되자 민족적 자주독립 의식이 높아지면서 민족 자주성 확보 수단으로 조직적인 체육단체를 구성하기에 이른다.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조선체육회(대한체육회 전신)가 출범한 것은 그해였다.
1920년 6월 1일 고원훈, 이동식, 윤기현, 장두현, 변봉현 등 47명은 민족대표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던 태화관(명월관 별관)에서 발기인 대회를 열고, 그해 7월 13일 창립총회에서 장두현(張斗鉉·1875~1938)을 초대회장으로 선출한다.
조선체육회 창립 이념은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을 함양하여 민족정기를 살리자는 취지의 ‘건민(健民)과 저항’이었다.
그렇게 민족 체육이라는 기치로 출범한 조선체육회는 첫 사업으로 그해 11월 배재고등보통학교 교정에서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4일~6일)를 개최한다.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는 오늘날 전국체육대회 기점이 되는 행사여서 역사적인 의의를 가진다.
개막경기 시구는 기독청년회 초대 교육부장을 지낸 월남 이상재(1850~1927) 선생이 하였으며 발기인 이중국(李重國)이 번역한 일본 전국중등학교 우승야구대회(1915년 창설) ‘야구 규칙’을 최초로 적용해 경기를 진행하였다.
월남 선생은 청년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온 힘을 쏟았다. 스포츠를 통해 신체를 단련하고 일깨우도록 직접 경기에 나서기까지 했다. 월남 선생은 ‘장사 100명을 길러야 한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며 청년들이 몸과 마음을 단련시키도록 격려했다. 그가 말한 장사란 일본인과 싸울 수 있는 인재, 100명이란 숫자는 무한대를 나타낸 것이었다.
출처 : 투데이 군산(http://www.todaygunsa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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