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 280억원 가량을 사회에 환원한 황필상 박사가 218.12.31.에 별세했다.
황필상 박사는 자신의 시신을 병원에 기증하며 마지막 길에도 나눔을 실천했다.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낸 황필상 박사는 1973년 26세 늦깎이로 아주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했다.
프랑스에서 국비 장학생으로 공부하며 박사 학위를 땄고,
1984∼1991년에 한국과학기술원(현 KAIST) 기계공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황필상 박사는 1991년 생활정보신문(수원교차로) 창업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그런데 이렇게 엄청난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황필상 박사는 기부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황필상 박사는 그의 모교인 아주대에 180억원을 기부했는데
이 때문에 140억원대 세금 폭탄을 맞았다.
그는 아내와 두 딸을 설득해 보유한 수원교차로 주식 90%(10만 8천주)를 모교 아주대에 기증했다.
시가 177억여원에 달하는 큰 액수였다.
학교는 '황필상 아주 장학재단'(현 구원장학재단)을 설립, 전국의 대학생들에게 장학금 및 연구비를 지원했다.
하지만 세무당국은 2008년 황필상 박사의 기부를 문제 삼아 재단에 140여억원을 증여세로 부과했다.
이 과정에서 황필상 박사는 연대납세자로 지정돼 약 20억원의 개인재산을 강제집행 당하기도 했다.
재단은 2009년 "명백한 장학지원 활동과 투명한 운영이 드러나 있는데도 거액의 세금을 부과한 것은 잘못"이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황 박사의 기부를 증여세를 회피하려는 의도로 볼 수 없다며 장학재단의 손을 들어줬지만, 2심은 황 박사의 경제력 승계 위험성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수원세무서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지난해 4월 "경제력 세습과 무관하게 기부를 목적으로 한 주식 증여에까지 거액의 증여세를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당시 황 박사는 "아주대에 주식을 내어주던 그때로 다시 돌아가더라도 기부를 하겠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구원장학재단 관계자는 "(황 박사가) 소송 스트레스 때문에 몸이 많이 약해지신 거로 안다"며 "좀 더 살아계셨으면 더 많은 나눔을 실천하셨을 텐데 이렇게 돌아가셔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황 박사는 1994년 아주대의료원에 시신 기증 서약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 측은 "황 박사는 병원이 개원한 이래 시신 기증을 서약한 1호"라며 "
고인의 뜻에 따라 기증한 시신이 의학 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황 박사의 빈소는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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