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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뉴스

아시아의 슈바이처 고 이종욱 WHO 사무총장

"우리는 올바른 장소에서 올바른 방법으로 올바른 행동을 해야 한다."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한국인 최초의 유엔 산하 국제기구 수장이었다. 그는 2003년 7월21일 WHO 사무총장에 공식 취임했다. WHO는 연간 예산 22억달러(약 2조6천400억원),전문 직원 5000여명에 이르는 유엔 산하 최대 국제기구다. 이 총장은 이곳에서 에이즈(AIDS)와 결핵,조류인플루엔자,중증급성호흡부전증후군(SARS) 등 전염병의 퇴치와 예방,세계 각국의 보건통계 및 보건의료 행정 지원 등 그야말로 세계인의 건강과 복지관련 일을 도맡아 총괄했다.



서울 경복고를 나와 1976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미국 하와이주립대 대학원에서 공중보건학을 전공한 이 총장은 평생을 의료봉사활동에 힘썼다. 이 총장은 서울대 의대 재학 시절 경기 안양시 나자로 마을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돌봤고,이곳에서 가톨릭 신자로 봉사활동차 한국을 찾은 동갑내기 일본인 레이코를 만나 결혼했다.



그가 WHO와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1983년 피지에서 WHO 남태평양지역 사무처 나병퇴치팀장으로 일할 때였다. 그는 서울의대를 졸업한 뒤 곧바로 피지에서 빈민층을 위한 의료구호사업에 매달렸던 것. 이후 WHO 남태평양지역 사무처 질병예방관리국장,예방백신사업국장,정보화담당팀장 등을 거쳐 사무총장이 되기까지 결핵관리국장을 역임했다. 이 총장은 WHO 예방백신사업국장 시절 소아마비 유병률을 세계인구 1만명당 1명 이하로 떨어뜨리는 성과를 올려 ‘백신의 황제’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 총장은 WHP 사무총장에 취임한 후 두 가지 큰 작업에 매달려 왔다. 이 총장 스스로 “죽기 아니면 살기 식으로 추진 중”이라고 표현한 이 일은 WHO의 구조조정과 AIDS 및 조류독감의 치료와 예방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이 중 WHO의 구조조정은 느슨하고 비대해진 중앙본부 조직과 구성원을 축소,재정 등을 세계의 빈곤한 지역에 집중시키는 일이었다. 이 총장은 생전 “WHO 총 예산의 40%를 본부에서 사용하는 등 예산 분배에 문제가 있었다”면서 “본부가 이 중 30%만 사용하고 나머지를 빈곤지역 의료지원 등에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해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또한 AIDS의 퇴치를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대표적인 사업이 개도국의 에이즈 환자와 감염자 300만명에게 치료제를 투여해 환자 수를 절반 이상 줄이는 ‘3 바이(By) 5 계획’이다. 이를 위해 그는 연간 40억달러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그동안 세계 각국을 돌며 기부금을 내줄 것을 설득해 왔다.

이 총장은 각국 지도자들로부터 ‘청백리’로 불리기도 했다. 그는 생전 자신 명의의 집이 없어 임대주택에 살며 대기환경 보호를 위해 전기와 가솔린 겸용의 소형 하이브리드카를 몰고 다녔다.



이 총장은 “젊은이들이 의대를 많이 가는데 돈 때문이라면 차라리 사업가의 길을 걷는 게 낫다”면서 “달콤하고 안락한 길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하고픈 일을 하면 언젠가는 세계기구 총장도 되고 노벨상도 받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해 왔다.

2006년5월 21일에 집무 도중 갑자기 쓰러져 급히 뇌혈전 제거 수술을 받았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다음날 사망했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분입니다. 당신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