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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뉴스

일제가 벌벌 떨었던 독립군 약산 김원봉 선생


김원봉(金元鳳, 1898년 9월 28일 (음력 8월 13일) ~ 1958년)은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이다. 호는 약산(若山),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1919년 아나키즘 단체인 의열단(義烈團)을 조직하였고, 황푸군관학교를 거쳐 조선의용대를 조직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합류하여 임시의정원(경상도 지역구)의원, 광복군 부사령관 겸 제1지대장으로 활동하고 1944년 임시정부 군무부장에 선출됐다.



1946년 2월 민족주의민주전선, 인민공화당, 조선 공산당의 적색테러 단체인 조선민주청년동맹(약칭 조선민청)의 명예회장을 역임했다. 1946년 8월 북조선의 합당을 지지하였으며, 1948년 김규식·김구 등과 함께 남북협상에 참여한 뒤에 1948년 4월 월북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부수립 후 국가검열성상, 노동상,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중앙위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남파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1954년 1월 25일 대한민국의 경제 혼란 및 선거 방해 목적으로 남파된 간첩단 4명이 체포되었다. 김일성과의 정치 암투에서 패배하였고 1958년 11월 김일성에 대한 비판을 제기한 연안파 제거 작업 때 숙청되었다. 그의 사망에 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으나, 정치범수용소에서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독립 후 일제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다 보니 독립운동을 한 분들은 이전보다 더 고난의 세월을 살게 되고, 일제에 부역했던 매국노들은 더 득세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렇기에 우리의 현대사에서 이승만은 매국노보다 못한 놈으로 평가되고 가르쳐져야 할 것이다. 그는 단순한 독재자가 아니다. 우리 나라에서 애국심을 없애고자 한 진정한 역적이라 할 수 있다.